헌혈을 하고 나면 ‘자부심’을 드립니다

혈액 기증자의 감성에 주목한 <나눔의 벽>

헌혈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 그렇다면 헌혈을 하고 나면 무엇을 주는지 기억하시는지? 헌혈을 하고 나면 당연히 헌혈증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빵이나 음료수를 주는 곳도 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영화표를 주기도 한다. 주면 받기는 하겠지만 대체 헌혈과 빵은 무슨 관계이고, 헌혈과 영화표는 또 무슨 관계일까?

이 관계는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다음의 질문에서 시작된 것들이다.

“어떻게 하면 헌혈에 참여하는 사람을 늘릴 수 있을까? 어떻게 헌혈 과정을 효율화할 수 있을까?”

미국 적십자는 오랫동안 헌혈 시스템의 효율성을 고민해왔다. 이동식 헌혈 차량을 운용하고 학생과 군인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아이디어들은 그렇게 나온 것이다. 하지만 적십자의 요청을 받은 세계적인 혁신 컨설팅 회사인 아이디오(IDEO)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왜 헌혈을 할까?”

아이디오는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꾸준히 헌혈을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점을 적십자에 알려주었다. 헌혈이라는 행동 뒤에 숨은 감정적인 이유를 관찰 조사를 통해 알아낸 것이다. 예를 들면, 기증자 중엔 어머니가 10년 전 헌혈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경우가 있었다. 알고 보니 대부분 기증자들은 이러한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아이디오는 ‘나눔의 벽’을 만들어서 헌혈하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그들이 왜 헌혈을 하는지 써서 그곳에 붙였다.

이것은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사람들은 나눔의 벽에 적힌 진솔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헌혈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또한 헌혈을 마친 후 나눔의 벽에 직접 이야기를 남기면서 참여의 자부심도 느끼게 되었다. 나눔의 벽은 이처럼 헌혈의 가치를 ‘체험’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일회성 기증자들이 지속적인 기증자가 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INSIGHT
아이디어를 낼 때 정말 중요한 것은 ‘문제 정의’이다. 아이디어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기 때문에 답을 잘 찾으려면 우선 문제를 잘 정의해야 한다. ‘헌혈을 하고 나면 영화표 대신 무엇을 줄까?’를 문제로 놓고 접근하는 것과 ‘왜 헌혈을 할까?’를 문제로 놓고 접근하는 답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좋은 답을 찾기 위해서는 오히려 좋은 문제를 찾아야 한다.

아직도 헌혈하는 사람에게는 빵과 음료수, 영화표 등을 준다. 심지어 빵과 영화표까지 주는 데도 헌혈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정말 ‘무심하다’거나 ‘이기적이다’라는 딱지를 붙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를 바라볼 때는 현상이 아닌 이면을 살펴봐야 한다. “왜 헌혈을 할까?” 이 왜(Why)를 풀기 위해서 사람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관찰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고 들은 내용들을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진짜 이유에 접근해 그 이면을 파악할 때 우리는 근원적인 솔루션을 찾을 수가 있다.

이코노믹리뷰 [박성연의 비영리를 위한 혁신 이야기]

저자 크리베이트
발행일 2014-10-10

멤버십으로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즐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