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업체로 성장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대표 전자업체들이 덩치는 커졌으나 제품 기획력과 창의성에서는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창의성이 높고 혁신적인 제품 개발에 뒤처질 경우 수익률 감소는 물론 기업의 존폐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코닥이나 소니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판매량을 합칠 경우 전 세계에서 휴대전화를 가장 많이 팔았다. 그러나 통신업계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죽을 쑤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세계시장 점유율은 2.8%에 그쳤다. 노키아(37.8%), 블랙베리(19.6%) 아이폰(17%) 등에 참패한 것이다.
앞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고 수익률이 높은 품목임을 감안하면 치명적인 경영상의 실수를 저지른 셈이다. 아이폰 효과로 인해 애플은 지난해 2·4분기에 32.8%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판매량과 매출액 2, 3위를 차지한 삼성과 LG는 각각 10%와 11%에 그쳤다.
전자책 분야도 아마존은 ‘킨들’이란 제품을 내세워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아이리버는 지난해 겨우 첫 제품을 내놓았다.
본체나 키보드 없이 화면에 표시되는 자판을 이용하는 터치형 노트북 ‘태블릿 PC’도 외국 업체에 밀릴 위기에 처했다. 태블릿 PC는 애플이 오는 27일 ‘맥 태블릿’을 공개하며 신시장을 열어젖힐 태세다. 국내 업체들도 뒤늦게 태블릿 PC 출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19일 출시한 렌즈 탈부착식 소형 DSLR 카메라도 이미 일본 올림푸스가 ‘PEN’이란 이름으로 선점한 분야다. 세계 최대 가전업체가 해외업체 따라하기에 급급한 형국인 셈이다.
영화 <아바타>로 대표되는 3차원(D) 입체영상 쪽도 일본 기업들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어 자칫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수세에 몰릴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들이 매출액과 판매량 기준으로 몸집만 키우고 두뇌 회전은 느린 ‘공룡’으로 퇴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최지성 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각 부문별 ‘판매량 1위’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마케팅 위주의 경영에 몰입하는 반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숨쉬는 첨단제품 개발에 실패할 경우 일본 전자업체들처럼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얽매여 혁신적인 제품 개발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성곤 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국산 전자책은 무선랜 기능도 빠져 있다”며 “무선망이나 응용소프트웨어 시장(앱스토어) 활성화에 소극적인 것은 통신사와 제조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력한 오너십 아래의 국내 기업이 혁신적인 사고에 둔감하다는 의견도 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전 회장이 1993년 ‘신경영 선언’을 계기로 ‘창의·혁신·자율’을 강조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과 복장 자율화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아래로부터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컨설팅 전문업체 크리베이트 박성연 대표는 “국내 기업도 고객 목소리를 담는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지만 아직 정확히 파악하는 곳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애플이 감동적일 만큼 고객의 요구를 간파해 제품에 적용하듯 똑똑해진 소비자와 잘 소통하는 기업만이 영원히 생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0.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