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과 알파고. 어딜가나 알파고 이야기다. 온 국민들의 대화를 과학 문명 비평과 인류의 미래와 같은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대화로 이끌어 준 것에 감사를 표하는 이부터 컴퓨터가 이렇게 빨리 우세할 줄 몰랐다, 알파고가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까지 그 반응도 참으로 다양하다.
경기는 끝났고, 결과는 알파고의 승리였다. 물론 컴퓨터 1200여대와 싸워 이긴 이세돌은 영웅 중 영웅이자, 그 힘든 와중에도 바둑을 즐겼다는 진정한 대인배이다. 그런데도 뭔가 모를 복잡미묘한 느낌과 여운들이 남는 이유는 이번 대결이 월드컵 경기처럼 단순한 승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생각보다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겠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을 뛰어넘는 컴퓨터는 비단 알파고뿐만이 아니다. 엘드릭 (Ldric)이라는 골프 로봇은 지난달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홀인원을 선 보이며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은행가에서는 일명 ‘금융 알파고’로 로보 어드바이저(Robo Advisor) 가 등장하고 있다. 로봇을 의미하는 로보(Robo)와 자문 전문가를 뜻하는 어드바이져 (Advisor)의 합성어로 일종의 인공지능 자산관리 서비스이다. 프라이빗뱅커(PB) 에게 서비스 받는 것 보다 수수료도 저렴하고 비교적 소액이라는 장점 때문에 2014년말 로보 어드바이저를 통해 거래된 금액은 미국에서만 190억 달러를 넘어셨다. 로봇 기자도 있다. 워드스미스(Wordsmith)라는 기사쓰는 로봇은 이미 2013년 한 해에만 300만 개가 넘는 기사를 썼다. 모든 미디어 기업들이 일년간 쓴 글보다 많은 양이다. 로봇이 쓰는 기사라 좀 떨어질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NFL(미국 풋볼) 관련해 워드스미스가 쓴 기사와 일반 기자가 쓴 기사를 비교하는 실험에 의하면 참가자 절반 이상이 누가 쓴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의 활약이 대단하다. 이런 가운데 옥스퍼드 대학교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가 발표한 ‘고용의 미래(future of employment)’ 보고서에서는 “자동화와 기술 발전으로 20년 이내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라는 우울한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이전 산업혁명 때 기계가 블루 칼라의 직종을 대체했다면, 이제 인공지능을 장착한 컴퓨터 로봇은 화이트 칼라 직종을 대체하기 시작하는 셈이다. 운 좋게 지금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그다지 큰 걱정거리가 아닐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자라는 아이들에게 이는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알파고가 지난 2년 동안 학습한 정보는 약 3000 만 개의 수로 사람으로 따지면 1000년 동안 바둑을 둬야 도달할 수 있는 양이다. 컴퓨터는 이렇게 무섭게 학습하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가? 현실은 아직도 암기하고, 여러 번 풀고, 더 빨리 풀고 하는 방식이다. 남보다 뭘 더 잘할지가 아니라 로봇보다 뭘 잘할지 고민해야 할 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도 현실은 별반 달라 진 것이 없어 보인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흔히들 컴퓨터가 흉내내지 못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창의성’을 말한다. 그런데 이미 자동화된 창의성(Automated creativity) 분야가 주목 받고 있다. 기본적인 코드를 통해 음악을 작곡하거나 이야기 구조나 등장 인물의 성격을 조합해 스토리를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동으로 생성해 씨드(Seed) 아이디어를 만들어 준다. 물론 아직까지는 작곡자나 스토리텔러, 아이데이션을 도와주는 보조적인 툴로 활용되고 있는 수준이지만 지금 이런 식으로 배우고 학습하다보면 로봇이 더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 놓을 지도 모르겠다. 알파고가 그랬던 것 처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혁신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아무리 암기를 잘 한들 컴퓨터 보다 잘 하기 어렵다. 아무리 계산을 잘 한다 한들 컴퓨터 보다 빠르기 어렵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하던 교육 체계를 그대로 답습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창의 국어, 창의 수학, 창의 영어 같은 무늬만 창의성 교육으로도 안된다. 창의성 교육에서도 질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독창적이길 원하는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낸다면 그게 바로 독창성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기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독특함을 온전히 펼칠 수 있도록 나에 대해서 탐구하고 이해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역사 수업, 음악 수업이 있듯 ‘나를 알아가는 수업’이 교과목으로 개설될 수는 없을까? ‘벼룩의 간을 빼 먹지’라고 할 때 ‘벼룩의 간이 얼마나 클까?’ 같은 호기심 넘치는 주제를 발굴하고 탐구해 보는 시간이 왜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가? 호기심은 끝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에게 ‘타이타닉’. ‘아바타’으로 잘 알려진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 감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직접 잠수함까지 만들어서 지구 바다 최저점까지 내려간 열혈 탐험가이기도 하다. 그의 호기심과 탐험심은 영화 타이타닉으로 이어졌고 이후 아바타에 이르기까지. 매번 사람들의 상상력을 뛰어넘었다.
우리가 알파고보다 더 빨리 연산하고 더 빨리 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알파고에게 풀 숙제를 던져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한 때 볼 거리,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나라 교육 개혁의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 로봇마저 창의성을 탑재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개혁은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이다.
박성연 크리베이트 대표
2016.03.18 동아일보 [박성연의 트렌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