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이디어는 ‘갑자기, 어쩌다보니’ 떠오른다고 생각하는 분들 계신가요?
물론 예술 영역에서 아이디어는 우연과 직관에 의존하기도 해요. 하지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과정(주로 비즈니스 아이데이션)은 매우 체계적이에요.
저도 한때는 아이디어란 자다가 번쩍, 길 가다가 뚝딱 하고 나온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다빈치나 셰익스피어처럼 수많은 작품을 남긴 천재들이 그랬듯이요. 하지만 창의성, 아이디어 관련한 책들을 읽어보니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아이디어는 길 가다가 툭 하고 떨어지는 게 아니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과정이 따로 있다!”
사람들은 천재들의 이야기들 중 자극적인 부분만 기억해요.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며 나체로 로마 시내를 뛰어다녔다는 것,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중력을 깨우쳤다는 것… 하지만 그들의 위대한 발견은 그저 욕탕에서, 사과나무 앞에서 생각 없이 멍 때리다가 나왔을까요? 아닐 거예요. 그들도 우리처럼 머리를 쥐어짜다가 떠올린 것이죠.
좋은 아이디어를 내려면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해요. 천재들은 단지 그 과정에 너무나 익숙해서, 우리가 며칠 밤을 새며 고민해야 나올 아이디어를 순식간에 척척 내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그들이 거치는 과정 하나하나를 천천히 밟아나가며 체득해야 해요. 오늘은 제가 정리해본 ‘6단계 아이데이션 프로세스’를 소개할게요.
1️⃣ 정의하고 제한하세요
회사에서 명확한 회의 안건도 없는데 ‘일단 얼굴 보고 얘기하자’ 식으로 소집한 회의만큼 귀찮은 것도 없죠? 내 머리도 마찬가지겠죠. 아이데이션의 주제조차 명확하지 않은데 아이디어를 내라고 재촉할 수는 없어요. 가장 먼저 ‘무엇’에 관한 아이디어인지, 핵심어를 포함한 주제를 확정해야 해요.
주제를 확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범위를 설정하는 거예요. 주제가 너무 넓어도, 또 너무 좁아도 아이디어를 내기 어려워요. 예컨대 ‘어떻게 하면 체중을 감량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 나는 무엇에 관한 아이디어를 원하는 걸까요? 잠시 읽는 것을 멈추고, 한 마디로 정리해보세요.
정리해보셨나요? 예컨대 이런 답이 나올 수 있겠죠.
- (있는 그대로 요약하는 게 최고!) ‘체중 감량 방법’
- (다이어트는 결국 건강을 위한 것이니까) ‘건강 관리 방법’
- (구체적일수록 좋지 않을까?) ‘올여름 수영장에 자신 있게 방문하기 위한 체중 5kg 감량법’
…이들 중 어떤 질문을 던져야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요?
절대적인 기준은 없어요. 주제에 관한 배경지식이나 경험 등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만약 체중감량을 여러 번 시도해봤고 체중감량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주제가 구체적일수록 아이디어를 내기가 수월하겠죠. 겨울에는 이렇게, 여름에는 저렇게 빼야 한다는 식으로.
반면 다이어트 초심자라면 주제를 지나치게 좁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올여름’ ‘5kg’ 등의 단서들에 매몰되어 아이데이션의 폭까지 좁아질 수 있어요. 그러므로 낯선 주제로 아이데이션을 한다면, 주제를 섣불리 확정하기 전에 관련 분야에 관해 폭넓게 찾아보면서 주제부터 이해해야 해요.
2️⃣ 관찰하고 축적하세요
핵심어를 포함한 주제를 확정했나요? 그러면 이제 진짜 문제를 탐색할 시간이에요. 해당 주제에 관해서 사람들은 어떤 말들을 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문제와 해결책이 정리되어 있는지 폭넓은 조사가 필요해요.
세상에는 수많은 정보원이 있어요.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시청해도 좋고,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것도 좋아요. 또 특정 사람들(ex. 어떤 상품의 소비자)과 관련된 문제라면 직접 현장을 방문해 관찰하고, 필요하다면 인터뷰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해도 좋아요.
요즘 너도나도 빅 데이터(Big data)를 보겠다며 난리죠? 하지만 빅 데이터만으로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 결과만을 관찰할 수 있을 뿐, 그 행동을 도대체 왜 하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두꺼운 데이터(Thick data)예요. 두꺼운 데이터를 쌓으면 행동의 원인까지 파악할 수 있어요.
직접 현실에 뛰어들어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그들을 이해해야 해요. 그래야만 행동의 원인이 제대로 보이고, 원인을 진단해야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낼 수 있죠. 진짜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을 찾을 때까지 충분한 데이터를 축적하세요. 생각의 재료가 많이 쌓여야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어요.
3️⃣ 질문하고 또 질문하세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이유는 낯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예요. 따라서 아이디어는 낯선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해요. 질문은 아이디어라는 답을 찾는 데에 필요한 빛과도 같아요. 어둠 속에서는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듯, 질문이 없는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는 너무나 어려워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을 만들어내야 해요.
주제에 관한 데이터를 많이 쌓아가면서 질문이 마구 샘솟는 것은 당연해요. 이 질문들은 아이디어를 내는 데에 소중한 자원이에요. 그런데 질문을 떠올릴 때 중요한 것은, 질문 하나하나 전부 정답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 가진 데이터로 답할 수 있는 질문만 던져야지”라는 부담은 내려놔야 해요. 일단 되도록 많은 질문을 던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질문을 계속 확장시키는 연습을 해봐요. 질문은 데이터 위에서 솟아나지만, 일단 생겨난 질문은 데이터를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녀야 해요.
4️⃣ 상상하며 대답하세요
이제 당신 앞에는 두꺼운 데이터와 수많은 질문이 쌓였을 거예요. 이들은 아이데이션의 소중한 자원이자 촉매예요. 다음으로는 이 질문에 대답하면서 아이디어를 내는 단계예요. 정답을 맞추는 과정이 아니라 상상하는 과정이에요.
상상(想像)이란 형상, 이미지(像)를 생각한다(想)는 뜻이며, 영어로 ‘상상하다(imagine)’도 어원은 이미지(image)예요. 즉, 상상이란 그림을 그리듯이 머릿속에 생각을 그린다는 뜻이에요. 앞서 떠올린 질문에 답할 때 단순히 추상적으로 좋은 말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림을 그리듯이 답해야 해요.
질문 과정과 똑같이, 상상하며 대답하는 과정도 꼬리에 꼬리를 물며 확장해야 해요. 발산을 할 때는 중간에 잘라내지 말고, 정리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계속해서 던져야 해요.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어도 전혀 개의치 마세요.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생각나지 않는다면 일단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세요. 다른 질문에 답하다가 뒤늦게 떠오를 수도 있으니까요.
5️⃣ 선별하고 정리하세요
무쇠를 만들 때는 뜨겁게 달궈진 쇳덩이를 급속히 식혔다가, 다시 뜨겁게 달구면서 철의 강도를 높이죠.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로 발산과 수렴을 반복해야 더욱 단단해져요. 마음껏 상상하는 시간이 끝났다면, 이제 아이디어를 선별하고 정리해야 해요. 우선 지금까지 나온 아이디어를 모두 나열한 뒤, 중복된 것은 제거하고 비슷한 것은 합쳐요.
모든 아이디어를 다 구체화하고 개발할 수는 없죠. 그중에 ‘될놈’을 선별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선별 과정에서 저지르는 실수가 세 가지 있어요.
첫째, 발산한 아이디어 자체가 별로 없는데도 섣불리 선별에 착수하면 안 돼요. 적어도 100개는 내야 5개 정도가 최종적으로 살아남아요. 그러니 아이디어가 너무 적다면 발산부터 더 하고 와야 해요.
둘째, 아이디어의 가치를 속단하면 안 돼요. 밤새 정성껏 쓴 연애편지를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보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처럼, 기껏 낸 아이디어도 죄다 별로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말, 아이디어에는 적용되지 않아요. 별로 안 좋아 보였던 아이디어도 정교화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아이디어로 재탄생할 수 있거든요.
셋째, 주관적인 느낌이나 선호만으로 선별하지 마세요. 사실 자신이 열심히 낸 아이디어를 객관적으로 보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분명한 선별 기준과 동료들의 피드백이 필요해요. 아이디어의 선별 기준은 산업별, 분야별로 다양하지만, 예컨대 신상품 아이디어를 선별한다면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도 있어요.
- 우리가 3년 안에 구현할 수 있는가?
- 소비자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가?
- 소비자의 현재 생활 양식(lifestyle)을 잘 반영했는가?
자, 이렇게 아이디어를 죽 나열하고, 합칠 것은 합치고, 없앨 것은 없애고, 기준에 따라 선별까지 마쳤다면, 이제 수렴의 과정은 끝난 걸까요? 아니요, 이제 여러 아이디어를 묶어서 ‘컨셉’을 만들어야 해요! 컨셉이란 여러 아이디어를 하나로 묶는 범주, 아이디어에 깔려 있는 ‘주된 생각’을 뜻해요. 컨셉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6️⃣ 검증하고 설득하세요
구슬도 꿰어야 보배이듯, 이렇게 잘 만든 아이디어와 컨셉도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죠? 신상품이라면 개발에 착수해야겠고, 습관이라면 당장 시작해야겠죠. 그런데 나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꾸길 원한다면 두 가지가 필요해요. 첫째는 나 자신이 그 아이디어가 먹힐 거라고 확신해야 하고, 둘째는 그 확신을 바탕으로 남들을 설득해야 해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이디어의 세계에서는 먹히지 않아요. 내 아이디어가 현실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려면 검증이 필수적이에요. 수학 문제를 풀 때 미지수를 대입해 검산을 하듯, 아이디어는 프로토타입(prototype), 즉 시제품으로 검증할 수 있어요.
프로토타입은 신속한 검증이 목적이므로,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어야 해요. 예컨대 물리적인 제품이라면 찰흙이나 장난감으로 만들 수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나 습관이라면, 역할극으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만화나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거예요. 이렇게 해보면 내가 낸 아이디어가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시제품을 검증해 ‘말이 된다, 해볼만하다’라는 확신까지 얻었다면, 이제 남들을 설득해야죠. 설득 관련하여 유용한 프레임이 바로 IBFS예요. ‘생각(I think), 이유(Because), 예시(For example), 결론(So)’ 순서로 설명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전달할 수 있어요.
이상의 6단계 아이데이션 프로세스는 꼭 순차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아이데이션이란 원래 발산과 수렴을 반복해야 하거든요. 하다 보면 같은 단계를 반복할 수도 있고, 한두 단계는 건너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처음에는 연습도 할 겸 순차적으로 해나가 보기를 권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