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 뭔지 몰라서 사전을 뒤져봤습니다

저는 사람의 창의력을 세상에 구현한 것이 혁신이라고 믿어요. 새로운 생각을 해야 새로운 행동, 새로운 시스템이 나오는 거니까요. 아이데이션, 창의, 혁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거죠.

그런데 요즘은 여기저기서 하도 ‘혁신, 혁신’ 하니까, ‘그래서 도대체 당신이 말하는 혁신이 뭔데?!’라며 되묻고 싶을 때도 있어요. 또는 ‘게슈탈트 붕괴’가 온 것처럼, 혁신이라는 말을 봐도 별로 두근거리지 않을 때가 많아요. 마치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안내 멘트를 들어도 별 감흥이 없는 것처럼요. 제 머릿속에서 혁신이라는 말이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혁신이 무엇인지 사전에서 찾아보고 나름대로 정의해보기로 했어요.

1️⃣ 사전 정의 살펴보기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혁신이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에요.

…여전히 추상적인 단어가 많이 나와서 잘 모르겠네요. 제가 사전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것일까요? 이렇게 된 거, 각각의 말뜻도 전부 찾아보는 것으로 하죠.

‘묵은’은 ‘시간이 오래된’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얼마나 오래되어야 묵은 것이죠? 사과는 하루만 상온에 있어도 누렇게 되는데, 통조림은 1년이 지나도 멀쩡하잖아요. 이처럼 시간은 상대적이라 명확한 기준을 잡기는 어려워 보이네요. 그러니 저는 조금 넓은 의미로, ‘새롭지 않은’, 즉 ‘기존의, 이미 존재하던’이라고 기억해두기로 했어요.

다른 말들도 훑어볼까요? ‘풍속’이나 ‘관습’은 ‘사회의 오랜 습관’이며, ‘습관’은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반복하며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에요. 한편 ‘조직’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집단’ 또는 그 구조를 뜻하며, ‘방법’은 ‘어떤 일을 하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취하는 수단이나 방식’이죠. 마지막으로 ‘새로움’은 ‘전과 달리 생생하고 산뜻하게 느껴지는 맛이 있음’을 뜻해요.

하나하나 뜯어봐도 너무 당연한 말들이라 혁신을 이해하는 데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느껴지시나요? 역시 책으로 사랑을 배울 수 없듯, 사전만 읽는다고 혁신을 아는 건 불가능할까요? 그래도 기껏 정의들을 죽 나열했으니 되도록 써먹어봐야죠. ‘혁신이란 무엇인가?’라는 포괄적인 질문을 조금 뜯어서 살펴보도록 해요.

2️⃣ 작은 질문으로 뜯어 답해보기

큰 질문: 혁신이란 무엇인가?

작은 질문 1: 혁신의 대상은 무엇인가?

답: 이미 존재하던 사회적 습관, 집단의 구조, 목적 달성의 방법

‘이미 존재하던’ 것이 아니면 혁신할 수 없어요. 즉 혁신의 대상은 망상, 공상, 미지의 대상이 아니에요. 우리가 현실에서 지금 파악하고 있는 대상이죠.

또, 혁신은 너무 개별적인 대상(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나 일시적인 대상(존재 시간이 너무 짧은 것)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요. 이런 대상에게는 혁신보다는 ‘수리’ ‘개선’ ‘조정’ 등의 말이 어울리죠. 혁신은 한결 집단적, 지속적인 대상과 어울려요.

작은 질문 2: 혁신의 방법은 무엇인가?

답: ‘완전히 바꾼다’

그런데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으로 대체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완전히’란 ‘모자람이나 흠이 없이’라는 뜻이죠. 따라서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바꾸기 이전과 비교하여 특별히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에요.

예컨대 회사의 제품 검증 프로세스를 혁신한 후, 제품 하자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면 그것은 혁신이라 볼 수 없는 것이죠. 단지 디자인이 예뻐진다고, 담당자가 바뀐다고 혁신이 아니에요. 바꾼 후에도 기존 이상으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해야 해요.

 

정리하면, 혁신이란 ‘우리가 현실에서 지금 파악하는’ ‘집단적, 지속적인 대상을’ ‘변화 후에도 기존 이상으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새롭게 하는 행위’를 뜻해요. 국어사전만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거기에 조금의 생각을 더하니 나름 새로운 정의가 도출되었네요. 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진을 펼친 김에 혁신에 관한 마인드맵을 좀 더 넓혀보기로 했어요.

 

3️⃣ 관련어 알아보기 

창의와 혁신의 관계

저는 이쯤에서 잠깐 창의란 무엇인지 찾아봤어요. 정말로 창의와 혁신은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창의는 ‘새로운 의견을 생각하여 냄. 또는 그 의견’이에요.새로운 아이디어나 아이데이션을 지칭하죠. 아이데이션 도중에는 발산과 수렴이 반복되다가 마지막 정리까지 마친 아이디어는 진짜로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 돼요. 신상품을 런칭하는 과정에 빗대어보면 실제 상품 개발에 들어서는 것이죠.

창의는 혁신에서 꼭 필요한 전제나 마찬가지에요.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야 새롭게 문제를 해결하니까요. 그런데 혁신은 단순히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기획/개발하는 활동만 의미하지는 않아요. 새로운 아이디어가 죽지 않고 살아남는 환경, 모든 구성원이 최고의 에너지로 아이데이션에 참여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과정 전반을 조직의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죠. 혁신적인 조직의 구성원은 유연하므로 새로운 아이디어에 도전하고 실험하는 것을 즐겨요. 이렇듯 창의는 혁신의 전제이며, 조직이 혁신적이면 구성원은 창의성을 키우기 쉽죠. 창의와 혁신은 선순환하며 조직과 개인의 유연성, 문제해결 능력, 현실 적응력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이죠.

 

혁신과 닮은 ‘개선, 개혁, 혁명’ 형제들

혁신과 헷갈리는 단어들이 참 많죠. 저는 ‘개선’ ‘개혁’ ‘혁명’ 그리고 ‘수리’ ‘조정’ ‘발명’의 뜻을 각각 살펴보며 비교해보기로 했어요.

개선은 ‘잘못된 것이나 부족한 것, 나쁜 것 따위를 고쳐 더 좋게 만듦’이에요. 포괄적인 말이라서 다른 형제들과 비교하면 어감이 가장 흐릿한 편이죠.

개혁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침’으로, ‘제도’나 ‘기구’라는 낱말에서 알 수 있듯 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쓰여요.

혁명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또는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새우는 일’로, 국가나 사회 등 거시적인 측면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운동을 뜻해요.

변화의 규모나 급진적인 정도에 따라서 ‘개선<혁신<개혁<혁명’ 정도로 나열할 수 있겠네요.

 

혁신의 사촌들, ‘수리, 조정, 발명’

수리는 ‘고장 나거나 허름한 데를 손보아 고침’이에요. 그러면 수리와 혁신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수리의 대상은 주로 개별 사물이죠. 개별 사물의 고장은 조직/방법의 고장보다는 구체적이며, 상대적으로 쉽게 파악하고 쉽게 고칠 수 있죠. 또한 수리의 대상은 고장 나거나 낡은 것이지만, 혁신의 대상은 꼭 그럴 필요는 없어요. 이미 존재하던 것이면 돼요.

조정은 ‘어떤 기준이나 실정에 맞게 정돈함’이에요. 대상을 현실이라는 틀에 맞추는 작업으로, 나온 곳은 집어넣고 부족한 곳은 채워 넣는 것이죠. 반면 혁신에는 기본적으로 틀이나 기준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어요. 오히려 현실이라는 틀이 바로 혁신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볼 수도 있죠.

발명은 ‘아직까지 없던 기술이나 물건을 새로 생각하여 만들어 냄’이에요. 발명은 주로 특허를 통해 국가의 인증을 받으니까, ‘아직까지 (적어도 그 나라에는) 없던’ 것을 만들어냈음을 증명하는 과정이 중요해요. 언뜻 비슷해보여도 전혀 다르다는 점을 관련자들에게 설득해야 하죠. 반면 혁신의 핵심은 ‘혁신 후 잘 작동하는지’이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으로 바뀌었는지’는 아니에요. 물론 선례 없는 아이디어를 적용한 혁신이라면 박수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러한 수준의 창의성과 용기가 늘 필요하다면 누가 감히 혁신하겠어요? 혁신가는 오히려 이전의 성공사례를 적극 참조하고, ‘나의 혁신은 이러이러한 점에서 이전에 성공한 혁신과 유사하므로, 성공 가능성이 크다’라는 점을 설득해야만 해요.

4️⃣ 정리하기

마치 아이데이션을 할 때 발산과 수렴을 오가듯, 사전을 뒤적거려 보며 생각을 첨가하니까 혁신에 관해 더 잘 알게 된 기분이에요. 위의 내용에서 저 나름대로 얻은 통찰 세 가지를 정리하며 글을 마칠게요. 혁신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나요?

첫째, 혁신은 지속적, 집단적인 것이므로 각오가 필요해요

혁신은 현실에서 여러 사람이 지속적으로 따르는 규칙, 방법 등을 새롭게 하여 목적을 더 잘 이룰 수 있게 만드는 행위예요. 개별적, 임시적인 대상에게 혁신이라는 말은 잘 어울리지 않아요. 예컨대 상품을 ‘개선’이 아니라 ‘혁신’한다고 하려면, 적어도 그 제품과 관련된 주제나 공정, 지식과 절차를 새롭게 하려는 각오까지 되어 있어야 해요.

 

둘째, 혁신가는 현실을 잘 관찰해야 해요

대체로 현실에 뒤떨어진 것이라 혁신의 대상으로 선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어요. 즉 현실에서 무난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도 얼마든지 혁신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따라서 혁신가는 지금 문제 없어 보이는 대상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어떻게 새롭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해요. 이는 길포드(Guilford)가 말한 창의성 구성요인 중 ‘민감성’에도 들어맞는 내용이죠.

 

셋째, 혁신의 최종 목적은 더 나은 문제 해결이에요

혁신은 궁극적으로 현실이라는 틀을 바꾸는 일이기에 그 자체의 기준이나 한계는 없어요. 그러나 그 틀을 마구잡이로 망쳐 놓고 혁신이라고 우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틀은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새로운 틀을 만들 때에도 문제 해결을 지향해야 해요. 혁신 전후를 비교했을 때, 혁신 후가 전보다도 문제 해결을 못한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닌 것이죠.

저자 크리베이트
발행일 197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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