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엣지있다’, ‘엣지있게’ 라는 말이 유행했다. 엣지는 ‘edge’라는 영어단어를 우리 말로 그대로 옮겨 사용하는 신조어로 ‘스타일 감이 좋다, 스타일이 개성 있다’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주로 패션, 디자인 등에서 사용되는 언어이다. 원래 ‘edge’라는 단어의 의미가 ‘날’, ‘날카로움’ 등을 뜻하는 것이니 기존의 스타일에 얼마나 날을 세워 차별화했는가가 엣지를 만든다. ‘날’을 세우는 것. 이는 비단 스타일의 완성에서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우리가 하는 일에서도 ‘날’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좀 더 날카롭게 날을 세울 수 있을까?
작은 차이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
날을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섬세함이 요구된다. 누구나 아는,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차별화된 무엇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아주 작은 파편을 보고도 놀라운 변화의 가능성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두드러지지 않는 작은 차이를 발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감각과 직관을 동원해야 한다. 작은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큰 차이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엄청난 발견 혹은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현재 자신의 관심사를 대하는 섬세함과 감수성이 발견한 ‘작은 무언가’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본적으로 질문하기
작은 차이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과 더불어 ‘근본적인 질문’ 역시 날카롭게 날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철학의 숙명은 앞서 있던 사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사상을 넘어서기 위해 철학자들은 근본에 대해 회의하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러한 ‘넘어서기’에도 몇 가지 수준이 존재한다. 당시 지배적인 하나의 사상(플라톤 철학, 데카르트 철학 등)을 넘어서는 것이 있고, 지배적인 하나의 흐름(이성주의, 경험주의 등)을 넘어서는 것이 있을 수 있다. 마지막은 하나의 시대를 지배하는 사고방식(근대사상) 그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는 결국 날을 어디를 향해 세우는가, 어디에 경계를 세울 것인가의 문제와 연관된다. 니체는 철학 밖에서 철학 그 자체를 사유함으로써, 근대까지 이어져 온 기존 철학의 사유방식에서 벗어난 철학을 창조했다. 니체는 “플라톤의 이데아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대신 “플라톤은 왜 이데아를 말하고 있는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질문함으로써 철학에 역사성을 불어넣는 ‘계보학’을 만들어낸 것이다.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원한다면 어디에 칼을 대고 틈새를 만들어 낼 것 인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떠한 질문이 그 틈새를 만들어 내고, 결국 그 틈새로부터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차이에 주목하는 섬세함과 날카로운 통찰력은, 결국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함으로써 새로움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그렇게, 생각의 ‘틈새’로부터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