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으면 기부할 수 있는 봉투, Rag Bag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께, 새 집 다오.

어릴 때 놀면서 누구나 한 번쯤 불러봤을 이 노래 구절이 기억나는지?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한 가지 들었던 의문점은 ‘헌 집을 주면서 왜 새 집을 달라고 할까? 적어도 새 집 정도는 주면서 헌 집을 달라고 하는 게 이치에 맞는 거 아닐까?’였다. 그런데 필자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가보다. 스웨덴의 스톡홀롬에 있는 의류 브랜드 Uniforms for the dedicated는 소비자가 새 옷을 사면 입던 헌 옷을 기부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새 옷을 사면 보통 상점에서 그러하듯 흰색 쇼핑백에 넣어 준다. 그런데 이 쇼핑백(Rag Bag)의 특이한 점은 뒤집으면 검정색 택배봉투가 된다는 것이다. 집에 가서 입고 입던 헌 옷을 벗어 이 검정색 택배봉투에 넣어 착불로 보내면 기부가 된다.

아주 쉬고 빠른 기부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헌 옷 수거함이 있다. 입던 옷들은 쓰레기봉투가 아니라 헌 옷 수거함에 넣으면 된다. 그런데 막상 헌 옷 수거함에 헌 옷을 넣기까지가 쉽지만은 않다. 언젠가 한 번은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옷장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고, 또 설사 수거함에 넣더라도 불우한 이웃들에게 ‘기부한다’는 인식까지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쇼핑백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헌 옷을 기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새 옷으로 기분 좋은 순간에 사람들이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는 점을 잘 포착하여 기부를 유도하고 있는 것은 물론, 넘쳐나는 옷 때문에 옷장의 빈자리를 걱정하지 않고 심플라이프를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정말 기특한 봉투이다.

좋은 일을 하는 또 다른 봉투도 있다. 네덜란드의 훗사크(Goedzak). 일종의 셰어링 봉투인데 투명 봉투의 반은 노란색 바탕에 Goedzak가 적혀 있고, 반은 안의 내용물을 볼 수 있다. 멀쩡한데 버려야 할 물건을 담은 일종의 재활용 봉투이다. 물건들을 봉투 안에 넣어 밖에 내다 두면 사람들은 제공자의 선한 의도를 파악해 가져가 활용할 수 있다.

동영상 : youtu.be/H5L3h6AjfK0
관련링크 : http://www.waarmakers.nl/projects/goedzak/

INSIGHT

물건을 내어 놓은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똑같이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는 행위인데도 어떤 봉투에 넣으면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되고, 어떤 봉투에 넣으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 된다.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에서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쓰레기인지 재활용할 수 있는 물건인지 구분 없이 길거리에 놓여 있는 물건을 가져오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탐이 나도 흙먼지를 털어내는 일도 귀찮고 남의 이목도 신경 쓰인다. 고민하는 와중에 눈, 비라도 오면 길가에 있던 물건들은 정말 말 그대로 쓰레기가 된다. 그런데, 선행 봉투에 담겨져 있는 것을 집어드는 순간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자신도 그런 선행을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정 사람을 향해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웃과 공동체에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사회에 대한 믿음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는 크고 거대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봉투 하나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는 있다. 분명히.

이코노믹리뷰 [박성연의 비영리를 위한 혁신]

저자 크리베이트
발행일 201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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