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암을 진단하는 시각 장애인

시각 장애인의 직업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생각나는가? 아마 십중팔구는 안마사를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안마사 자격증은 시각장애인에 한해서 발급된다.

그런데 우리의 고정 관념을 조금만 바꾸면, 늘 그렇지만 전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시각장애인의 그 예민한 손끝 감각을 안마 외에 다른 곳에 활용할 수는 없을까? 이런 상상을 현실로 옮긴 이가 있다.

독일의 산부인과 의사이자 사회혁신기업가 프랑크 호프만은 시각장애인의 촉각을 활용해 여성 유방암을 만져서 진찰하는 사회적 기업 디스커버링 핸즈(Discovering Hands)를 설립했다. 여성 시각장애인들에게 9개월간 유방암 촉진 방법과 의사소통 기술을 가르친 후, 여성 유방 검진자로 병원에 취업 기회를 연결시켜 주었다. 그 결과 보통 일반 여성이 스스로 감지하거나 의사가 촉진해 발견하는 종양의 크기는 1~2㎝ 정도인 반면, 훈련된 여성 시각장애인은 이보다 훨씬 작은 6~8㎜의 작은 종양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의사들의 촉진 시간은 3분 정도에 불과하지만, 시각장애인 촉진 전문가들은 30분 이상 환자와 소통하며 정밀히 촉진을 시행했는데도 불구하고 검진 비용은 오히려 X선 검진료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호프만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좀 더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촉진용 점자 진단검사 매핑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결과 일반 의사들보다 시각 장애인들이 30~50%나 더 종양을 잘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각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고,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친절하지만 훨씬 더 저렴한 비용으로 유방암 조기 발견 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자신들이 하는 것보다 더 정밀한 작업을 대신 잘 수행해 주었다. 모두가 윈윈한 셈이다. 특히 새롭게 창출된 일자리가 시각 장애인의 다른 전문성을 인정받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관련링크: http://www.discovering-hands.de/en/

INSIGHT

세상의 모든 것에는 여러 가지 이면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의 면을 보는 것에 익숙하고 다른 이면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면을 쳐다보기 위해서는 다정한 눈길도 필요하고 요모조모 쳐다볼 여유도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 에너지가 많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바쁘다.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습관대로 한다. 하나의 면을 바라보고 판단한다. 옆도 보고 뒤도 보고 밑도 보아야 한다. 그래야 잡초인 줄 알았던 민들레가 약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세상 만물 중 어느 것 하나 반짝반짝 빛나지 않는 것은 없다. 어디에 어떻게 놓여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어쩌면 장애인을 하나의 고정된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장애일지 모르겠다. 하나의 시점으로만 쳐다보는 ‘시점 장애인’.

이코노믹리뷰 [박성연의 비영리를 위한 혁신]

저자 크리베이트
발행일 2016-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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