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다른 데에서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세요?”

“음… 비슷한 걸 예전에 해봤는데 잘 안 됐어요.”  

“…. (아무 반응 없음).”

아이디어를 냈다가 이런 반응에 부딪힌 적이 있나요? 그럴 때 “역시 내 아이디어는 별로야”, “아이디어를 내봤자 소용없어”라고 좌절하지는 않았나요?

아이디어를 내면 결국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아야 해요. 그런데 나는 대박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디어마저 저평가 당할 때도 참 많지요. 신나게 아이데이션을 할 때는 간과했던 지점들을 타인으로부터 지적 받으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원래 무언가에 몰입해 있을 때는 부정적 측면은 잘 안 보이기 마련이죠.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훈수를 둘 때는 또 기가 막히게 보이지요. 내가 자주 마주치는 ‘아이디어 훈수꾼’들의 감정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에요.

 

아이디어 평균회귀의 함정

하지만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려서 아이디어를 쉽게 죽이면 안 돼요.  객관성을 더하고자 피드백을 받는 건 중요하지만, 평가를 받다가 좋은 아이디어도 죽을 때가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아이디어 훈수꾼의 공격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신선했던 아이디어도 빛깔을 잃고 그저 그런 것으로 돌아가 버려요. 아이디어 평균회귀의 함정이죠.

어도비의 CPO 스콧 벨스키는 신선했던 아이디어가 평균으로 회귀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혼란스러운 중간 상태, 즉 메시 미들(messy middle)에서 가장 안 좋은 선택은 처음엔 신선했던 통찰력이 (이런저런 이유로) 평균을 향해 회귀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

– 어도비의 CPO 스콧 벨스키, <어도비 CPO의 혁신 전략(the messy middle)>

그렇다면 어떻게 훈수꾼들로부터 내 아이디어를 지키고, 피드백을 양분 삼아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요? 제가 그동안 경험했던 5가지 훈수꾼(a.k.a 아이디어 킬러)의 유형과, 그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지켰던 방어법을 공개합니다!

 

아이디어 훈수꾼의 5가지 유형

제가 생각하는 아이디어 훈수꾼의 다섯 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 데이터만 집착하는 데이터 중독형
  • 둘째, 자기 경험만 믿는 고정관념형 
  • 셋째, 묵묵 부답하는 무반응형
  • 넷째, 모든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형 
  • 다섯째, 비슷한 사례만 나열하는 정보나열형 

이제부터 각각의 특징과 대처법을 살펴보겠습니다.

 

1️⃣“데이터 가져와, 데이터!” 데이터만 집착하는 <데이터 중독형>

이 유형은?

데이터 중독형 훈수꾼은 아이디어의 좋고 나쁨을 떠나 데이터가 없으면 불안한 사람들이죠. 데이터가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아이디어는 데이터에서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질문, 상상, 통찰 등을 꼭 거쳐야 하는데요, 그럼에도 데이터 중독형 인간들은 데이터 외의 근거를 지나치게 경시합니다.

대처법은?

대처법은 간단합니다. 데이터를 주면 됩니다. 아이데이션 과정에서 조사한 자료들 가운데 적합한(그들이 원할 만한) 데이터를 제시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식품 회사의 신상품 마케터이고, ‘불닭볶음면 고수맛’ 아이디어를 발표한다면, 어떤 데이터를 제시해야 할까요?

  • 민트초코, 파인애플 피자 등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에 관한 논쟁이  바이럴 효과를 일으켜 트렌드가 되었다는 데이터
  • ‘코로나로 여행을 못 가면서 동남아시아 등 해외음식을 집에서 요리해 즐기거나 배달해 먹는 사람이 증가했다는 데이터
  • 검색량, 구매지표, 리뷰 분석 등 해외 향신료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보여주는 데이터

제가 간단히 떠올려 본 예시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데이터를 생각하셨나요? 데이터 중독형 훈수꾼에게는 심증 말고 물증을 주어야 합니다. 물증만 있으면 설사 마음에 안 드는 아이디어라도 수긍하므로 대처가 어렵지는 않습니다.

 

2️⃣“라떼도 해봤는데 안 되더라~” 자신의 경험만 믿는 <고정관념형>

이 유형은?

고정관념형 훈수꾼은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 내가 한 것만 믿는 사람들입니다. 종종 ‘나 때는 말이야’라며 자신이 과거에 시도했는데 실패했던 사례를 들고 오죠. 시대가 바뀌면 실험 결과도 달라질 수 있음을 간과합니다. 자신의 경험만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아이디어 하나에 대해서 안 되는 이유를 백만 가지도 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생각만 해도 무섭네요 )

대처법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경험에는 경험입니다. 따라서 고정관념형 훈수꾼에게는 간접 경험, 즉 성공 사례를 제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건강관리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다고 가정해보죠.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고 건강이 좋아진 연예인, 건강관리 서비스를 성공시켜서 매출이 급증한 회사의 사례를 제시하는 겁니다.

고정관념형은 특히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나 의식하는 사람의 사례일 경우 백발백중 움직입니다. 그래서 라이벌 회사의 성공 사례를 예로 들면 “그래? 그럼 우리도 해야지!” 이런 식으로 단번에 태도가 바뀔 수 있습니다.

 

3️⃣“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관심 없어 보이는 <무반응형>

이 유형은?

무반응형 훈수꾼은 아이디어에 아무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내 아이디어 발표가 끝났는데 찬성도, 반대도, 별다른 코멘트도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이 없어서 무척 답답하게 합니다. 특히 중요한 의사결정자가 무반응형이라면 문제가 커집니다. 나는 우리 회사, 우리 가정을 생각해서 기껏 아이데이션을 해왔는데 별 반응이 없다면 김이 빠지고 변화의 가능성도 작아져버리죠. 이런 유형을 가장 무서워하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대처법은?

무반응형 훈수꾼에게는 지금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라고 경종을 울려야 합니다. 어떻게?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해서 알려주세요. 생각을 안 하면 안 되도록 만드는 겁니다.

예를 들어 A 상품에 B 기능을 넣자고 아이디어를 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B 기능을 넣지 않았을 때 벌어질 일을 생생하게 시뮬레이션해서 설명해보세요. 무반응형 훈수꾼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면? 이제 계획을 설명해줘야 합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언제까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상세한 행동 계획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그들이라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행동에 나설 겁니다.

4️⃣“왜 일을 만드냐?” 모든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형>

이 유형은?

보수형 훈수꾼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따라서 변화를 유발하는 아이디어는 강하게 거부합니다. 큰 회사, 작은 회사 불문하고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유형인데요. 아이디어가 좋든 나쁘든 자기 일이 늘어나는 것이 싫으니 무작정 비판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입니다. (무반응형이 방치형이라면 보수형은 적극적 수비를 펼칩니다)

대처법은?

보수형은 제일 격렬하게 반대하기 때문에 방어가 쉽지 않아요. 따라서 정면충돌을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내 아이디어를 구현한다고 해서 일이 크게 늘어나거나 회사가 망하는 게 아니라고 안심시키는 거죠. 리스크와 대처 방안을 자세하게 설명해줄수록 좋습니다.

제가 써먹은 방법 중 가장 유용한 것은 ‘프로토타입으로 테스트한 결과를 직접 보여주며 문제없다고 설득하기’에요. 보수형 훈수꾼에게는 “안 되면 안 할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라며 안심부터 시키고, 일단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보세요.

 

5️⃣“이거 다른 데서 이미 하던데요.” 레퍼런스가 많은 <정보나열형>

이 유형은?

정보나열형 훈수꾼은 본 것도 많고. 해본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어떤 아이디어를 마주하든 관련 정보를 곧바로 떠올리고 술술 ‘썰’을 풀 수 있는 사람이죠. 보수형과는 달리 일을 하기 싫다거나 어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움이 될 때도 많아요!) 하지만 종종 “이거 다른 데서 이미 하고 있어.”라는 말로 기운이 빠지게 만듭니다.

대처법은?

정보형 훈수꾼에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때는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더해 달라고 요청하세요. 그러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한 보따리 쏟아낼 거에요. ‘아이디어를 죽이는 리액션’에서 ‘아이디어를 살리는 리액션’으로 전환시키는 전략입니다. 정보형 훈수꾼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이로운 조력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I≠Idea” 아이디어와 나를 분리하세요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는 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아이디어와 나를 동일시합니다. 아이디어를 비판하면 마치 자신을 비판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죠.

오랫동안 공들이고 애정을 쏟아서 만든 아이디어이기에 마치 내 자식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구든 자식이 욕먹으면 좋은 마음일 수 없고 마치 나를 욕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죠.(맴찢ㅠ) 하지만 아이디어는 내가 아닙니다. 평가 받을 때는 나와 아이디어를 멀리 떼어 놓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저항을 수반합니다

아이디어라는 것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지요. 새로운 것은 저항을 수반하기 마련입니다. 유용한 피드백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되 가능성을 차단하는 피드백은 현명하게 튕겨낼 줄 아는 ‘스킬’을 길러보세요. 공들여 만든 아이디어가 세상 빛도 못 보고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여러분이 만났던 빛나는 발견의 순간에 더 집중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