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이 잠깐만 간단한 일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하며 붙잡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된다.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하는 것은 많은 비영리 단체에서 사용하는 방식이지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좋은 의도라는 것은 알지만 설명 듣는 것도 부담스럽고, 설명을 듣고 나면 왠지 기부를 해야 할 것 같은 중압감에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누가 꼭 시켜서 하는 찝찝한 기분마저 들 수 있다.
그런데, 아무런 부담 없이 자발적 기부를 유도하는 똑똑한 벤치가 있다. 암 연구와 암환자를 위한 영국의 자선단체인 Cancer Research UK는 런던의 두 지역에 현금카드나 신용카드를 버스 탈 때 대는 것처럼 가져다 대면 2파운드를 기부할 수 있는 벤치를 10여개 설치했다. 그냥 앉기만 하는 벤치는 아니다. 벤치에 스마트 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포트도 있고 무료 와이파이도 제공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면 배터리가 떨어져 당황하는 일이 종종 생기는데 이럴 때 충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거나 편의점에서 돈을 내고 충전서비스를 받는 대신, 벤치에 앉아서 인터넷을 보면서 충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도움을 받으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마음이 넓어지고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 스마트한 의자는 바로 이때를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의 좋은 마음을 아주 쉽고 빠르게 기부로 연결한다. 간단하게 카드만 갖다 대면 기부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 놓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이런저런 설명을 들어야 하는 부담감도 없고, 금액도 3000원 정도 소액으로 정해져 있어 얼마를 낼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냥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꼭 충전해야만 이 벤치에 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충전을 하지 않더라도 친구를 기다리거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앉아 있다가 기부를 할 수도 있고,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처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손쉽게 기부할 수도 있다.
이 스마트 벤치는 Cancer Research UK, 스마트벤치 제작사인 스트로베리 에너지, 마케팅 회사인 MKTG의 합작품으로, 충전 포트, 무료 와이파이와 함께 공기 질, 소음, 온도, 습도 등 현재 환경에 대한 정보도 알려준다. 태양열을 동력으로 사용해 친환경적이며 설치와 관리 또한 쉽다. Cancer Research UK와 스트로베리 에너지는 올해 안에 스마트벤치를 100개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관련링크: http://smartbench.london/
INSIGHT
기부를 하고 싶은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다. 먼저 기부를 떠올리는 것이 어렵고, 떠올렸다 하더라도 기부 방법이 어려울 수 있으며, 길거리 모금 활동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로 기부에 대한 생각도 떠올리고 기부 방법이 손쉽다 하더라도 모르는 사람과 대면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을 수 있다. Cancer Research UK의 스마트 벤치는 기술을 이용해 공공장소 내에서 부담 없이 손쉽게 기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앉을 수 있는 벤치처럼, 기부도 평범한 일상이 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행동을 설계하는 디자인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코노믹리뷰 [박성연의 비영리를 위한 혁신]
2017.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