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을 이뤄 글을 쓰는 상호 글쓰기(페어 라이팅 pair writing)
최근 팀원의 제안으로 상호 글쓰기(페어 라이팅, pair writing)을 해 보았다. 페어 코딩은 들어봤는데 페어 라이팅이라니……
상호 글쓰기란 말그대로 서로 짝을 이뤄서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다. 사실 시작 전에는 의구심이 많았다.
글 쓰기를 서로 상호 협의해서 한다고?
글을 쓰다 보면 글 자체가 힘이 있어서 내 글인데도 내 마음대로 안될 때가 있는데 같이 한다고 다를까?
누가 등 뒤에서 내 글을 보고 있다면 생각하면 글이 써질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선경험 후결론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일단 한 번 해 보기로 하였다. 1차 회의는 글의 개요를 정하는 것이었고 그 후 파트를 나눠서 각자 초안을 쓰고 2차 회의를 통해 다듬기로 하였다. 총 두 번의 글쓰기가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글쓰기는 혼자, 두 번째 글쓰기는 같이 하였다. 첫 번째 글쓰고 나서 확신했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아니라 짧은 글 정도는 각자 쓰는 게 훨씬 낫겠다고. 혹시나?는 역시나!군. 이런 생각들이 지배적일 즈음 두 번째 글쓰기를 진행했다.
그런데, 상호 글쓰기를 하는 동안 고정관념들이 산산히 깨졌다. 내가 쓴 초안이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거치게 되었고 혼자서는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상호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개선되어 갔다. 수정 사항도 더 명확해 졌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수정할지 대안도 훨씬 더 빨리 찾아졌다. 첫 번째 글쓰기가 A가 A’를 B가 B’를 만드는 작업이었다면 두 번째 글쓰기인 상호 글쓰기는 A와 B가 모여서 C를 만드는 느낌이었다.
협력은 operation을 같이(co) 하는 맡은 바를 쪼개는 것
그러면서 협업과 협력에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초안을 잡고 각자 맡은 부분을 작성하기로 하였을 때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협력일까? 협업일까? 할 일을 쪼개고 누가 책임을 맡을지 R&R을 정하였다. 서로 힘(力)을 합치기는 하였지만 업(業)을 같이한 정도라고 할 수는 없다. 협력이라고 하는 하지만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각자 맡은 바를 쪼갠 1/n에 가까웠기에 영어로는 operation을 같이(co) 한 cooperation 정도. 협력을 한 것이다.
협업은 laboration을 같이(co) 하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반면, 나온 초안을 가지고 전체 완성된 글이라는 목표를 서로 공유하면서 이 부분을 과감히 지우고 이 부분은 추가하고 서로 의견을 조정하면서 하나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두 번째 상호 글쓰기를 하였다. 이는 단순히 힘을 합치는 정도가 아니라 업을 같이 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A와 B가 아닌 C가 나왔기에. 즉, laboration을 같이(co)했기에 협업. 콜라보레이션을 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곰표 맥주같은 이종이든 구찌 X 베르사체와 같은 동종이든 ‘콜라보 마켓팅’할 때 그 콜라보는 단순 협력이 아니라 상호 공동 작업을 통해 공동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축구로 따지면 화려한 개인기만 펼치는 게 아니라 내가 골을 넣고 싶어도 나보다 내 동료가 더 유리한 위치에 있으면 공을 패스해서 골을 만드는 것. 비록 나는 골을 못 넣을 수도 있지만 우리 팀은 골을 넣는 것. 그것이 협업이다.
협업과 협력의 차이를 구분해야
조직에서도 함께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원팀, 팀웍, 협동, 협력, 협업 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언어가 있다는 건 다양한 상태가 있다는 증거이다. 똑같은 빨강인데 왜 ‘뻘거다’와 ‘붉으죽죽하다’가 다 따로 있겠는가? 협업이 중요하다면 구호로 외치는 협업이 아니라 각각의 차이를 구분하고 현재 우리의 조직은 협력하고 있는지 협업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