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많은 분들이 재택근무를 위한 혁신에 관심을 보여주시고 문의해 주셔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재택근무로 해야 하는 업무와 그렇지 않은 업무가 따로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구분됩니다. 재택근무는 단순히 공간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일 하는 방식의 변화이기 때문에 일의 성격에 따라 재택근무에 더 적절한 업무와 그렇지 않은 업무가 있게 마련입니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명확한 업무들은 재택근무에 적절하지만, 명확하지 않고 모호함이 존재하는 상황들, 예를 들어 함께 논의를 통해 무엇인가를 결정하거나 계획하는 회의는 재택근무보다 대면근무가 더 낫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재택근무 하면서 회의때문에 어려움을 겪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회는 회의, 지시, 보고 등과 같은 재택근무에서 커뮤니케이션 이슈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뤄보려고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이란
혼자서 일할 때 커뮤니케이션 이슈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 명이 함께 일하는 조직에서 커뮤니케이션 이슈는 매우 중요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서로의 의사, 감정, 사고를 전달하는 일입니다. 말로 하든, 몸으로 하든, 그림으로 그리든. 결국 전달하는 사람과 전달받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 이상 일할 때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사르트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다르면 지옥이라고. 각자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면 서로 다른 뷰 포인트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만큼 시너지도 많을 수 있지만, 각자 생각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코스트가 많이 듭니다. 말로 지시하는 게 편한 상사와 그 말을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는 부하 직원. 곰곰히 생각하고 농축된 말을 하기 좋아하는 직원과 일단 아무말이나 하다가 영감이 떠오르는 상사. 내 마음을 맞춰봐 수준의 고난도 독심술과 영어도 불어도 아닌 제 4의 언어를 직역, 의역하면서 느꼈을 그 많은 한(恨)과 스트레스의 뒤범벅들이 눈 앞에 선합니다.
이런 스트레스는 부하 직원만의 것은 아닙니다. 상사들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상사라고 지시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시할 때에는 전달하는 사람이 되지만 보고 받을 때는 전달받는 사람이 됩니다. 전달받는 사람과 전달하는 사람 누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요도는 판단할 수 없을지라도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었는지 못 되었는지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여부는 판단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커뮤니케이션은 양측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은 오로지 전달 받는 사람이 제대로 전달 받았는지로만 판단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개떡같이 이야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으면 그 커뮤니케이션은 성공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하게 전달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없다면 제대로 전달한 것이 아닙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했을 경우,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말하는 쪽이 엉성했든, 알아듣는 쪽이 엉성했든 잘잘못을 따지면 문제만 불거집니다. 다 서로 다른 입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은 둘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의 갭을 확인하고 이를 없애는 것입니다.
핵심은 알아듣게 하는 것
커뮤니케이션 잘 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화려한 발표 스킬이 아닙니다. 그 발표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이해가 높아졌다면 발표를 잘 한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은 남들이 그 말을 알아들었는가로 판단해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알아듣지 못했다면,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나를 되돌아 봐야 합니다. 못 알아듣는 사람이 바보가 아니라, 못 알아듣도록 한 사람의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여러 모로 도움이 됩니다. 다른 사람은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바꿀 수 있기 때문이죠.
사무실에서 일할 때에는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다양한 옵션이 있습니다. 회의실로 불러서 한 꺼번에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전달 할 수도 있고, 담배 한 대 피면서 은근슬쩍 전달하는 방식도 있고, 자리에 불러서 지시 할 수도 있습니다. 메일로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무실에서는 주로 대면해서 지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상사의 말하기 스타일에 따라서 이해의 난이도는 천차만별 달라집니다. 말에는 맥락이 중요하기 때문에 똑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사람마다 사용하는 쓰임이 다른데,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서 일했다는 것은 그러한 백그라운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하고 이야기 해도, ‘어’하고 알아듣는 경지인 것이지요.
그런데,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말보다는 글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은 메신저라는 툴이 있어서 글이지만 말에 가까운 글도 있긴 합니다. 이렇게 말보다 글로 전달하려고 하면 아무래도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는 생각을 정리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글은 Text라서 Context가 배제되어 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해서 전달하기 때문에 오히려 말보다 명확한 경우도 많습니다.
What-Why-How로 지시하라
재택근무 상황에서 업무를 지시할 때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What-Why-How라는 마법의 프레임입니다. 내가 지시하려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왜 해야 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통 How까지 지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게의 경우 How는 지시 받은 쪽에서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What와 Why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Why는 설명하지 않고 뭘 하라는 What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지시 받은 쪽에서는 시킨대로만 일하기 마련입니다. 부하직원은 맥락을 모르니, 시킨대로만 합니다. 하지만, 상사는 시킨대로만 일한다고 불만입니다. 새로운 생각이나 고민이 덧댄 흔적이 없다는 것이지요. 당연하죠. Why를 알려주지 않았으니. 사실 일 잘하는 사람들은 Why를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출판사를 가정해 봅시다. 기자들에게 돌릴 보도자료와 책을 포장하는 상황입니다. What은 보도자료 돌릴 책 포장입니다. 이 지시를 받은 직원은 어떻게 포장할까요? 그냥 봉투에 책 한권, 보도 자료 하나씩 넣어서 포장을 하겠죠. 대부분 이렇게 일할 것입니다. 이런 단순 작업을 시킨다며 불만인 사람도 있을테고, 열심히 빨리 빨리 포장해서 빨리 끝내고 뿌듯해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데, 일 잘하는 사람들은 Why를 생각합니다. 이걸 왜 보낼까? 이걸 보내면, 기자들이 볼테고, 기자들은 수 백권씩 이렇게 받을 텐데…우리 책을 보기나 할까? 생각이 여기에 미친 사람들은 뭔가 다른 시도를 합니다. 예를 들어 봉투 색깔을 다르게 한다거나, 책 101페이지에 ‘앙스트블뤼테’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뭐 이런식의 메모를 끼워 넣거나 하는 등 어떻게든 책을 보게끔 만들 수도 있겠지요. 참고로 ‘앙스트블뤼테’란 생물학 용어로 불안을 뜻하는 독일어 앙스트와 개화, 만발, 전성기를 뜻하는 블뤼테의 합성어로 우리말로는 ‘불안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의미입니다. 꽃을 피우지 않는 전나무가 생태계가 위협받을 때 절정으로 꽃 일 피우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불안이 꽃일 피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의미이죠.
재택근무는 명확한 지시를 훈련하는 훈련장
어쨌든, 일 잘하는 사람은 why를 생각하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상사가 먼저 Why를 알려주고 지시할 수 있겠지요.
사무실에서 대면해서 일할 때에는 대충 전달해도 빈틈을 메울 수 있는 방법들이 많습니다. 부하 직원 입장에서는 ‘왜 이런 업무를 해야 되는지?’ 진위를 물어볼 수도 있고, 또 상사는 부하 직원이 잘못 일하고 있다면 지나가다가 슬쩍 보고 피드백을 주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재택근무는 서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일하기 때문에 훨씬 더 명확하게 업무를 전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라는지 What에 대해서도 훨씬 더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What이 나오게 되는 배경인 Why에 대한 함께 설명을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Why를 미리 설명해 주면 Why를 파헤지기 위한 소모적인 에너지를 아낄 수 있습니다. 지시를 훈련하고 싶다면, 재택근무만큼 훌륭한 환경도 없습니다. 재택근무로 더 효과적으로 지시하는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