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르트조르흐 하이터치 사례
뷔르트조르흐: 관리자 없는 팀으로 의료 혁명을 일으키다

의료 조직에서 ‘관리자’는 당연한 존재로 여겨진다. 일정 관리, 인력 배치, 보고 체계, 성과 평가까지. 복잡한 의료 환경일수록 관리의 역할은 더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관리자가 없어도, 잘 작동하는 의료 조직은 가능할까.

네덜란드의 방문 간호 조직 뷔르트조르흐는 이 질문을 실제 운영 모델로 증명했다. 2025년 현재, 이 조직은 9,000명 이상의 직원이 백만 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고 있다. 환자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9.1점, 직원 만족도는 업계 최고 수준으로 이직률은 8% 미만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비용을 약 40% 절감하면서 이 모든 성과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뷔르트조르흐 모델이 국가 의료비를 약 10% 줄였다고 평가한다.

관리자가 없는 조직이 어떻게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답은 ‘하이터치’에 있다.

의료 비용은 오르는데, 현장은 왜 더 바빠지는가

전 세계 의료 시스템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는 비용이 계속 오르지만 환자 만족도와 의료진의 업무 만족도는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관리 구조와 프로세스는 점점 복잡해졌지만 의료진은 환자보다 행정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있다다.

2006년, 네덜란드의 간호사 요스 드 블록은 이 문제를 직접 목격했다. 그가 일하던 홈케어 회사는 효율성을 이유로 간호 업무를 잘게 쪼갰다. 주사 놓는 사람, 목욕시키는 사람, 약을 주는 사람이 모두 달랐다. 방문 시간은 분 단위로 통제됐고, 간호사는 환자의 눈을 마주할 시간조차 없었다. 한 환자를 하루에도 다섯 명의 간호사가 방문했고, 각 방문은 15분으로 제한됐다. 환자는 ‘사람’이 아니라 ‘업무의 집합’이 되었다.

겉으로 보면 완벽하게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시간당 처리 건수는 높았고, 인력 운영은 최적화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환자의 상태는 쉽게 악화되었고, 재입원율은 높았으며, 돌봄 기간은 길어졌다. 간호사들은 환자가 아니라 보고서를 위해 일한다고 느꼈다. 이직률은 높았고, 의료 비용은 계속 올랐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 오히려 비효율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우 터치의 한계였다.

커피 한 잔의 대화가 입원을 막은 이유

뷔르트조르흐는 이 방식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간호사 한 명이 의료적 처치, 심리적 지원, 생활 환경까지 통합적으로 돌보는 홀리스틱 케어를 도입했다. 여러 사람이 나눠 돌보던 환자를 같은 팀이 장기간 책임진다. 환자에게는 ‘내 간호사’가 생기는 것이다. 관계의 연속성이 회복된 것이다. 

환자를 방문한 간호사는 혈압을 재고 약을 챙긴 뒤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환자와 대화를 나눈다. 기존 시스템이라면 ‘시간 낭비’로 여겨질 행동이다. 하지만 대화 속에서 간호사는 환자가 혼자 식사하기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가족과 식사 일정을 조율하고, 이웃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 환자의 영양 상태는 개선됐고, 입원 위험은 사라졌다. 커피 한 잔의 시간이 수백만 원의 입원비를 막은 셈이다.

진짜 효율은 관계에서 나온다

겉으로 보면 15분 방문이 더 효율적으로 보인다. 시간을 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효율은 문제를 키우지 않는 데서 나온다. 환자를 인간으로 대하면, 진짜 문제가 보인다. 뷔르트조르흐의 환자들은 기존 홈케어 대비 회복 속도가 30~40% 빠르고, 입원율은 약 30% 낮다. 조기 개입과 예방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시간당 비용은 높을 수 있다. 고숙련 간호사를 쓰고 충분한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봄 기간은 짧아졌다. 10개월 걸리던 돌봄이 5개월로 줄어들면, 시간당 비용이 높아도 총비용은 낮아졌다. 하이터치는 비용을 늘리는 선택이 아니라, 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는 방식이었다.

약 대신 관계를 처방하니 생긴 변화

드 블록은 환자를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관계망 속의 존재로 봤다. 이를 ‘양파 모델’이라 불렀다. 환자를 중심에 두고, 가족과 이웃 같은 비공식 네트워크, 간호팀, 병원과 전문의 같은 공식 네트워크를 겹겹이 연결했다. 핵심은 간호사가 모든 걸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자신의 삶과 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운 것이다. 

남편을 잃고 우울증에 빠진 70대 환자에게, 간호팀은 약을 늘리는 대신 지역 노인 모임과 산책 모임을 연결했다. 6개월 후, 환자는 약을 끊고 일상을 되찾았다. 돌봄을 개인의 문제에서 공동체의 문제로 확장시킨 것이다. 

관리자를 없애자 주인의식이 생겼다

뷔르트조르흐의 가장 혁신적인 구조는 자율 관리 팀이다. 간호사 10~12명이 한 팀을 이루고, 동네 50~60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일정, 예산, 채용까지 팀이 스스로 결정한다. 중간 관리자는 없다. 중앙 조직은 통제하지 않는다. 대신 코치와 최소한의 백오피스만 두어 행정과 보험 처리를 지원한다.

이 구조의 전제는 신뢰다. “당신은 전문가입니다.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이 신뢰는 간호사들을 지시를 따르는 노동자가 아니라, 환자의 삶을 책임지는 전문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이직률은 업계 평균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기술의 목적을 바꾸자, 돌봄의 밀도가 높아졌다

뷔르트조르흐 역시 IT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다만 기술의 목적이 다르다. 기술은 직원을 감시하거나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행정과 기록, 보험 청구를 자동화해, 간호사가 환자 곁에 머무는 시간을 확보했다. 그 결과 간호사는 업무 시간의 70% 이상을 환자와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한 간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는 컴퓨터가 아니라 환자의 눈을 보는 게 일입니다.” 기술은 사람을 대체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났을 뿐이다.

하이터치는 ‘사람을 더 쓰는 전략’이 아니다

뷔르트조르흐의 성과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 환자를 인간으로 대하는 구조, 직원을 신뢰하는 구조, 기술을 보조로 쓰는 구조. 그 결과 환자도, 직원도, 사회도 모두 윈윈이다. 

많은 조직은 여전히 하이터치를 친절이나 태도의 문제로 이해한다. 하지만 뷔르트조르흐가 보여준 하이터치는 다르다. 하이터치는 사람을 더 쓰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관리자를 없애고, 신뢰를 주고, 시간과 판단권을 함께 주었을 때 사람은 비용이 아니라 성과가 된다. 기술이 더 똑똑해질수록, 사람의 따뜻함은 선택이 아니라 전략이 된다. 이것이 뷔르트조르흐가 증명한 하이터치의 힘이다.

우리 조직은 어떤 구조를 선택하고 있는가

뷔르트조르흐의 사례는 의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객 서비스든, 영업이든, 기획이든 마찬가지다. AI가 단순 업무를 대체할수록 사람에게 남는 일은 예외 상황, 맥락 판단, 감정이 섞인 문제들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조직이 여전히 하이터치를 개인의 태도나 문화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는 것이다. 친절 교육을 늘리고, 공감 역량을 강조하고, 조직 문화를 개선하려 한다. 하지만 구조는 그대로 둔다. 사람이 감정적 충격을 흡수하도록 설계된 구조, 판단은 요구하지만 권한은 주지 않는 구조, 책임은 개인에게 몰리지만 결정은 시스템에 묶인 구조. 이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의도도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 조직은 사람을 어디에 배치하고 있는가? 판단을 요구하면서 권한도 함께 주고 있는가? 관계를 만들 여유는 구조적으로 존재하는가? 조직이 사람을 소진시키지 않으면서도 인간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하이터치 컨설팅 문의]

저자 크리베이트
발행일 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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