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베이트 재택근무 메타사고 생산성 전략
[재택근무 혁신] ‘열심히’가 아니라 ‘잘’ 하려면? – 생산성 전략편

메타적으로 고민하고, 어떻게 잘 전달할지를 고민하라.

조직에서 재택근무를 지속시킬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생산성 측면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생산성이란 무엇일까요? 생산성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생산성이란 뭔가를 투입해서 산출되는 것입니다. 보통 일터에서는 시간 당 하는 일로 정의됩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시간을 줄었다거나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일을 했다면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산성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과 일 

생산성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과 일 두 가지입니다. 시간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지 이미 말씀드렸기에 이번에는 일 측면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물론, 일을 무엇으로 정의하는가?에 따라 그 정의도 달라질 것입니다. 양적인 측면도 있을 수 있고, 일을 성과로 연결시킨 질적인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 논의하기 전에 지식 노동자라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지식이란 무엇일까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던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한 프로타고라스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 지식이라고 했습니다. 동양에서도 도가의 경우 자기 자신을 아는 깨달음으로 지식을 개념화했습니다. 옛날 고대 선인들이 말한 지식에는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실용성 보다는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자신에 대한 앎이 지식이었기 때문에, 그 외의 지식들은 분리되어 존재했었습니다. 기술, 기능 같은 것들은 배울수도 없었고, 가르칠 수도 없었고 오로지 어깨 너머로 오랫동안 함께 일하면서 스스로 터특할 수 밖에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장인들의 배움은 이런 도제 방식을 통해서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지식 사회, 지식 노동자라는 말을 합니다. 지식 노동자는 머리를 써서 지식을 활용해 일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때 ‘지식’이란 삶에 대한 깨달음이라기 보다는 어떤 일에 대한 능력으로 해석됩니다. 물론 자신에 대한 깨달음도 여전히 중요한 이슈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평생 추구해야 할 일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일터에서는 말하는 지식이란 삶에 대한 깨달음보다는 일하는 방식에 대한 깨달음에 가깝습니다.

Why를 고민한다는 것은 메타적으로 해석한다는 의미 

일터에서는 ‘열심히’보다는 ‘잘’이 중요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Why를 고민하는 사람이고 했던 것 기억하시는지요? Why를 고민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일에 대해서 메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메타라는 것은 ‘넘어서서’, ‘아우르는’ 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메타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더 추상적인 관점에서 일의 다른 측면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 보도자료를 보내는 언론사에게 보내는 출판사 직원이라면, 시킨대로 하던대로 누런 봉투에 보도자료와 책을 넣어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이 책들을 보내는가? 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됩니다. 나는 왜 이 보도자료를 보내야 하는가? 보도자료를 보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우리 책이 보도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메타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입니다. 메타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만이 일을 성과로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책이 보도되기 위한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다른 창의적인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보도자료와 책을 보냈지만, 별로 성과가 없었다면 우리 보도자료가 별로 안 좋은가? 아니면 보도자료는 좋은데, 기자들이 아예 열어보지도 않는가? 너무 많은 책들이 쏟아져서 안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면 책을 보게 할 수 있을까? 봉투 색깔을 바꿔볼까? 질문의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됩니다.

만약, 뉴스레터를 보내는 홍보 직원이라면, 내가 왜 이 뉴스레터를 보내야 되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Why를 고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질문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그 질문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뉴스레터가 잘 보내졌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지? 클릭율로 알 수 있나? 뉴스레터 가입 후에 가입율로 알 수 있나? 어떤 콘텐츠를 보내야 회원으로 가입할까?

일을 성과로 연결시키려면 

이것이 바로 일을 성과로 연결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냥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일을 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성과를 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그냥 What이나 How를 고민하는 사람과 Why를 고민한 후 What이나 How를 고민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럼, 누가 이런 고민을 해야 할까요? 지식 사회에서 이런 일은 사장이나 관리자의 몫이 아니라 그 지식을 다루는 사람의 몫입니다. 그게 인턴이든, 부장이든 상관 없습니다. 그리고 회사도 지식 노동자에 대해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야 합니다. 지식을 다루고 있는 사람의 지위여하를 떠나서 그 사람이 그 지식을 장악하고 있다면 존중하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OO나부랭이가 뭘 할 수 있겠어요? 라는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마치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많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시킨 일이나 하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경우들을 종종 봅니다. 물론, 의욕을 부렸다가 상처받고 ‘다시는 모난 돌이 되어 정 맞지 않으리!’를 가슴 깊이 새긴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처 때문에 지식 근로자의 본문은 망각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걸 망각하고 시키는 일 모드로 전환하는 순간, 계속해서 그런 일만 주어지는 늪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관리자 입장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과, 시켰을 때 성과를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누구에게 일을 줄까요? 물론, 그렇게 뼈빠지게 일해봤자 일복만 터진다고 하소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뭔가 진심을 담아 일해 본 사람은 성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성장의 속도를 회사가 받아준다면 회사 내에서 성장할테고, 그 성장의 속도를 회사가 받아주지 못한다면 밖에 나와서 성장할 것입니다. 회사로부터 독립해서 일한다고 일하는 방식이 달라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에도 알아차림과 깨어있음이 중요하다   

정리하면, Why를 고민한다는 것은 메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태스크가 아니라 그 일의 의미를 고민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과와 연결시켜 생각하기 때문에 일을 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일을 잘 한다고 해도 그것이 드러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겠지요. 특히 지식 노동자들에게는 일을 하는 만큼, 한 일을 알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것은 과대 포장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 한 일을 알리고 전달하는 것 또한 일의 일부입니다. 특히 지식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얼마나 이해했는지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제품과 관련된 유사 제품에 뭐가 있는지 조사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가 열심히 리서치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리서치한 결과를 다른 사람이 쉽게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후한 점수를 주기 마련입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리서치를 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왜 안 알아주냐? 야속해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리서치를 했다하더라도 도대체 알아먹을 수가 없다면 그 사람은 냉정히 이야기해서 일하지 않은 것과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업무는 공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내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업무는 내가 아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다른 사람이 아는 것입니다. 내가 100을 조사했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이 10을 안다면 그 사람은 10만큼 일한 것이고, 내가 70을 알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이 70을 알았다면 그 사람은 70만큼 일할 것입니다. 비록 적게 일했더라도 더 많이 일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무임승차가 불가한 재택근무

이게 같이 모여서 일할 때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업무를 혼자서 맡은 경우도 있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서로 섞이면서 흐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재택근무를 하면 일한 성과가 투명하게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협업하기에는 오히려 재택근무가 더 유리한 경우도 많습니다. 함께 모여서 일하면 보면 무임승차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마련인데, 이는 구조적으로 그렇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한 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재택근무에서는 다 드러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무임승차가 불가합니다. 평소 생산성이 중요하다고 외쳤던 조직이라면 재택근무를 통해 생산성을 중요시하는 모드로 전환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자 크리베이트
발행일 202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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